그림, 미술.
처음 기억은 아주 어렸을 때,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
친구를 따라서 미술 학원에 간 기억이다.
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
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떠오른다.
나보다 한 살인가 많은 예쁘장한 여자애(당시에는 언니)가
있었는데, 그 애는 크레파스를 분주히 문지르며 스케치북을
채워가고 있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.
"꼼꼼히 칠 해. 꼼꼼히."
어린 시절 미술학원 덕분인지 그림 그리기 대회나
과학 상상 그림 대회 혹은 여러 학교내외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
종종 상을 받았었다.
(사실 그림 그리기보다 글짓기나 독후감 상을 몇 배는 더 받았다.)
두 번째 기억은 고등학교 미술 시간이다.
인문계 고등학교라 1학년 때는 음악을
2학년 때는 미술을 배웠다.
역시나 다른 것은 다 기억나지 않고 미술 실기 시험을
'유화'를 그리는 것으로 봤었다.
처음 접하는 아크릴 물감은 밥 로스를 떠올리게 해서 그런지
신나고 재미있었다.
달력의 그림을 보고 어두침침한 바다를 그렸던 것 같다.
처음 그려보는 유화였는데 실기 점수도 잘 받고
반 친구가 그 그림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.
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,
그림을 그리고 싶다.
종이를 눈 앞에 마주하고 연필을 들었을 때,
머릿속에 떠오르는 오브젝트를 그려내고 싶다.
술술 그리기는 힘들어도 더듬더듬 지우고 다시 그리고
그렇게 반복하며 머릿속에만 있는 형태를
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
그처럼 또 매력적인 일이 있을까.
결심을 실행에 옮기고
이제 시작하기로 한다.
처음 크레파스를 집고
그 몽툭하고 동글하고 부드러운 것을
하얀 종이 위에 미끌어뜨릴 때의
설레임을 상기시키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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